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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후 쓸 말이 없더라… 시골의사 박경철이 전하는 글쓰기 특급 훈련법

by 아카이브맵 2025.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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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후 쓸 말이 없더라… 시골의사 박경철이 전하는 글쓰기 특급 훈련법


12,000권의 책을 소장하고 서재만 세 곳을 운영했던 박경철은 글쓰기가 생각보다 만만해 보였다고 회상한다. 독서량이 많으면 글도 자연스레 잘 써질 거라 믿었지만, 실제로 '나는'이라는 말 이후 한 문장을 잇지 못하면서 그는 글쓰기의 냉혹한 현실을 체감했다.

독서는 분명 머리에 들어온다. 그러나 읽는 것과 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머릿속에 지식이 쌓여도 그 지식이 곧바로 문장으로 흘러나오지는 않는다. 이 단절감을 뼈저리게 느낀 그는 언어의 한계를 인정하게 된다. 인간은 생각을 온전히 말로 전할 수 없고, 말은 글로 완전히 옮겨지지 않는다. 말과 글, 생각의 세 층위는 각각의 간극을 가지고 있다.

그는 뛰어난 학자의 글을 읽으며 쉽게 이해되지 않는 문장에 당황했고, 반대로 시골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에는 몰입하며 웃고 즐겼다. 이는 표현 방식과 맥락, 삶의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글에서 영감을 받는 것은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이전에 그 주제나 분야에서 쌓아둔 사고의 토대 덕분이었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는 독서를 ‘섭취’에 비유한다. 책을 읽는 것은 영양분을 섭취하는 과정이지만, 그것이 곧바로 말이나 글로 ‘방출’되지 않는다. 섭취 이후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한 다음, 말과 글로 재탄생시켜야 비로소 글쓰기의 실력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박경철은 선각자들을 따라하는 데에서 훈련의 시작점을 찾았다. 화가들이 처음에는 유명 화가의 작품을 모작하며 그림의 구도를 익히듯, 글쓰기도 처음엔 따라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모작을 통해 기본기를 익히고, 이후 자신만의 글쓰기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직접 실천한 글쓰기 훈련법은 매우 구체적이다. 첫 번째 단계는 칼럼 필사다. 20번 이상 반복해서 필사하고, 매번 읽으며 문장이 걸리는 부분을 교정한다. 원문보다 더 뛰어나다고 느껴질 때까지 반복하며, 같은 주제로 글을 다시 써보는 방식도 병행한다. 이 과정을 소화하는 데는 평균 15~20일이 걸렸다.

다음 단계는 ‘글맵씨’ 훈련이다. 이는 정서, 심리, 감정 표현을 섬세하게 훈련하는 단계로, 오정희의 단편선을 필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무려 18개월간 지속된 이 훈련은 글에 감정을 실어 표현하는 법을 익히기 위한 고도의 내공 수련이었다.

박경철은 말한다. 좋은 글은 읽은 책의 양이 아니라, 표현된 삶의 깊이에서 비롯된다고. 글을 쓰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의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읽는 것이다. 결국 글쓰기는 살아온 삶의 반영이며, 훈련을 통해 길러지는 기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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